블로그 활동이 꽤 오랜 시간 멎어있었지? 이런저런 일 때문에 바빳다면 핑계일 거고, 솔직히 여행기를 작성하던 것도 까맣게 잊고 살았어. 블로그가 정지했던 18년 4월부터 19년 3월 현재 약 11개월의 시간동안 내게도 한번의 사랑이 찾아왔다 떠나갔고, 내가 아끼던 80D 역시 이별을 고하게 되었어. 당분간 사진은 Canon EOS 350D로 촬영을 하게될거야. 이 참에 소니로 넘어가야지! 사랑이 떠나간 자리를 스스로 메꾸려고 온갖 일을 하던 차에 잊혀져있던 블로그를 찾게 되었고, 오늘 이 글을 정리하면서 지난 11개월의 일.. 이라기보다 최근 3개월의 일을 풀어볼까 해. 오늘의 주제는 "소중한 것들은 갑자기 찾아오고, 갑자기 떠나가기 마련이다."야.
지난 18년 12월부터 나는 2년만의 유럽 여행을 계획했어. '엘 까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의 길'이라는 뜻이야. 예수의 12제자이자 가톨릭 성인인 '성 야고보'의 시신이 담긴 관이 바다위를 떠돌다 도착한 곳이 바로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도시였대. 때문에 역사로만 치면 중세부터 시작된, 현재는 트래킹 코스로 각광받고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한 아주 유명한 길이지. 여행을 떠나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 가고 싶었고, 기회가 왔고, 떠났을 뿐이야.
<레온의 거리>
스페인 사람들은 여유롭고 친절했다.
본래 프랑스 남부의 '생 장'이라는 곳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800km의 코스인데, 나는 시간과 돈때문에 스페인의 '레온'이라는 도시에서 시작하여 총 322km 를 걸었어. 순례자임을 증명하는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도 받았고, 기념품으로 가리비 껍데기도 하나 구입해서 보조가방에 매달아 두었지. 그런데 걷기 시작한지 3시간 쯤 지나니까 가리비는 어느새 사라져있더라구. 이때는 짐작하지 못했지. '엘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내려놓음'을 배우게 될 줄이야!
걷기 시작하고 첫 5일 동안은 그래도 걸을만 했어. 풍경은 들판에서 산으로, 산에서 도시로 변해갔고, 발의 상태도 매우 양호했지. 첫 날 걷기로 한 코스가 레온 - 산 마르띤 (25 km)로 다소 짧은 구간이었는데, 우리의 컨디션을 믿고 7 km나 더 걸어서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로 향했어. 첫 날은 그저 좋았지. 생각보다 덜 힘들었고, 왠지 더 빠르게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어.
그 기세를 몰아 나는 욕심을 내었어. 빨리 완주하고 스페인에서의 여유를 만끽할 기대감에 가득차 있었지.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에서 '아스또르가'까지는 약 23 km로 쉬는시간까지 포함해서 6시간 안에 퉁과해내었지. 숙소가 채 열기도 전에 그 곳에 도착했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다른 한국인 순례자들은 매일 30 km 이상 걸어내는 강행군으로 나를 자극시켰지.
다음날 원래 목적지는 '라바날 델 까미노(21 km)' 였어. 갑자기 짧아졌다고 무시하면 안돼. 이 구간은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는 아주 가파른 경사를 자랑하는 코스야. 나는 4 km를 더 얹어서 그 다음 마을인 '폰세바돈'까지 가기로 마음 먹었고 가파른 산구간을 쉬지않고 올라갔지.
폰세바돈에 도착할 무렵, 산의 정상에 가까이 다가가서인지 바람도 심하게 불고, 날씨고 굉장히 추웠어. 심지어 숙소에서 발견된 '베드버그'까지! 이보다 나쁠 순 없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지. 그 다음날 출발 할때는 날씨가 더 험해져서 눈과 우박이 섞여서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데다가 20m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보라가 심했어. 그 와중에 원래 목적지인 '몰리나세까'를 건너뛰고 11km나 더 걸어서 '폰페라다'까지 가기로 한 상황이었고, 택시를 탈까 고민하다가 '내리막길'이니까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어.
물론 이는 아주 큰 오산이었지. 오르막길은 올라갈때는 아주 수고스럽고 지치는데 그치지만, 내리막길(그것도 아주 가파른!)을 내려갈때는 발목이 아작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되었어. 거기다가 세찬 바람을 타고 내 뺨을 긁어대는 우박과 굵은 눈발은 덤이었어. 이 날의 일이 발목에 굉장한 무리를 주었어.
폰페라다 이전에 있는 마을 '몰리나세까'는 동화같이 예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조그마한 마을이었어. 미슐랭 스타를 받은 맛집도 있었다고 하고, 하루종일 이어지던 가파른 내리막 자갈길이 끝나는 지점에 존재하는 마을이라 발목이 비명을 질러댔지.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서 내가 욕심을 버리고 몰리나세까에 멈춰서서 하루를 보냈다면 친구의 발목 상태가 악화되는 일 없이 온전히 까미노를 완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러지 않았지. 그저 하루만 빨리!를 외쳐대며 폰페라다까지는 걸어야겠다는 욕심을 냈을 뿐이었어.
다음 날, 나와 내 친구는 슬슬 몸에 무리가 온다는것을 알게되었어. 친구는 발목 뒤쪽의 아킬레스건에 손상이 갔는지 발목 부근이 시큰하고 삐걱대기 시작했고, 나는 발바닥의 통증(물집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어)이 너무 심해서 30분을 채 연속으로 걷지 못할 지경이 되었지. 걷는 속도는 급격하게 느려졌지만 '빠르게' 완주해야한다는 욕심은 여전했어. 결국 이 날 또다시 무리를 하게되었어.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
해가 지기 직전에야 목적지였던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에 도착할 수 있었고, 도착하고 난 뒤는 완전 엉망진창이 되어있었어. 10걸음을 걷는 것 조차 너무 고통스러워서 저녁을 먹으러 가는 백수십 m의 구간도 절뚝 거리며 간신히 걸었어. 내 친구 역지 마찬가지였지. 하룻밤 자고 나니 발 상태는 조금 괜찮아 진거 같았고. 나는 다시 산행을 시작했지만....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에서 출발한지 3시간 만에 8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트라바델로'라는 곳에서 멈춰서고야 말았어. 밤새 내린비에 산길은 미끄러웠고, 발바닥의 고통은 갈수록 더해져서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신음이 나왔지.
결국, 우리는 사상 최초로 목표 거리를 완주하지 못한 채. 3시간에 8 km라는 처참한 속도로 걷다가 지쳐서 '트라바델로'에서 하루를 보내기로했어. 그리고 회의를 했지. 더 걷기에는 무리가 있고, 일단 집에는 가야하지 않겠냐는 의견에 모두가 동의했어. 결국 100 km 구간을 택시로 점프하여 '사리아'라는 도시에서 2박 3일간 요양을 하기로 결정했어. 아쉬웠지만... 어쩌겠어 말 그대로 집에는 돌아가야지.
그리고 다음날 택시를 타고 사리아로 향하던 길. 산을 하나 타넘는데 우리가 걸어야할 그 길을 택시타고 이동하고있었지. 처음에는 아쉬웠어. 눈꽃핀 풍경이 정말 예뻤거든. 그런데 그 뿐이었어. 시간이 흐르니까 다시 강한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불기 시작했지. 그런 날씨에 걸었으면 아마 뉴스에서 내 이름을 볼 수 있었을거야. 그리고 '사리아'에서 여유로운 2박 3일을 보냈지.
일단 택시를 타고 100 km나 점프한 탓에 우리 일정에는 여유가 생겼어. 무엇보다 2박 3일간의 휴식동안 발이 완전히 회복되었지. 레온에서 출발했을 때와 비교해도 속도가 아주 빨랐어 1시간에 4.5km를 주파했으니까..
그 이후에도 무언가 많은 일들이 있었어. 그런데 굳이 적지 않는 이유는... 사진이 없어...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3일 전, '아르수아'라는 도시에서 내 카메라를 도둑맞았거든. 그 동안 찍었던 많은 사진들과 함께 내 카메라는 영영 사라지게 되었어. 처음엔 아쉽고 심란했지만, 그저 걷다보니 카메라 뷰 파인더로 보는 세상과는 또 다른 아주 멋진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구. 내가 가진 취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지.
어딘가 여행을 갔을 때, 내 손에는 항상 카메라가 들려있었어. 모두가 행복하게 놀고 있는 사진 속에 나는 없었어. 나는 나 나름대로 여행을 즐긴 것이겠지만,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때부터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고' 즐거운 추억속에 내 모습을 담게 되었어. '내려놓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이지.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온 날, 전 여자친구가 인천 공항에 마중나와있는 깜짝 이벤트를 해주었어. 하지만 나는 부모님과의 선약이 있었고, 여자친구와 함께 부모님에게 향했지. 그 날 밤 헤어질때 전 여자친구가 매우 아쉬워 하더라구. 사실 부모님과의 약속은 내일로 미룰수도 있던건데 말이야. 물론 부모님이 더 중요하고 여자친구야 헤어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형들도 있겠지만. 그때 여자친구의 표정을 본 내 기분은 썩 좋지 않았어.
그리고 2주 뒤, 그녀는 내게 이별을 통보했지. 아버지의 압박과 직장 스트레스로 인해 날 떠나게 된거야. 갑작스런 이별이었지. 그리고 아직까지도 마음을 정리하는 중이야. 그리고 지금 문뜩 이런 생각이 들어.
"소중한 것들은 갑자기 찾아오고, 갑자기 떠나가기 마련이다."
내 카메라.. 예전부터 사고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었지만 첫 월급 받자마자 덜컥 사버려서 '쓸데없는 짓 한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었지. 내가 나름 노력해서 처음 얻어낸 보물이였는데, 자고 있어나니까 사라져 있었지. 전 여자친구 역시 어느날 문득 찾아와서 내 마음을 두드리더니 어느새 훌쩍 떠나버렸어. 만일 내가 카메라를 잃어버렸을 때, 카메라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지 않고 허둥댔다면 이번 여행은 최악의 기분으로 마무리 했을거야. 전 여자친구에 대한 생각 역시 빨리 내려놓지 않으면 내가 하는 업무와 학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하게 되겠지.
나한테 어쩔수 없이 닥친 일에 대한 걱정은 그냥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사진과 게임 만큼이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주저리가 길어졌네! 나는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해야겠어. 긴 글 읽어줘서 고맙고, 내가 블로그를 잊고 있던 사이 들어와서 볼품 없는 글을 읽어준 2천명의 형들 고마워! 나는 더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로 돌아올게.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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